38.“저기, 짐...”빨대를 입에 문 채로 고개를 아래로 처박고 있던 커크는, 본즈의 부름에 살짝 눈을 들어 본즈를 째려보았어. 썩 곱지 않은 눈초리에 본즈는 말을 하다 말고 저절로 입을 다물었지. 커크는 마치 며칠 동안 물 한 모금을 못 마셔 한이 맺힌 사람처럼 쪽쪽 소리가 나게 음료를 빨아들이고 있었어. 본즈는 다디단 스무디가 순식간에 바닥을 보이기 ...
36.본즈는 느지막히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어. 두꺼운 커튼을 쳐둔 탓에 거실 안은 아직 어둑하기만 했어. 하지만 그 사이로도 빛이 조금은 새어들어오고 있는 걸 보면 이미 해가 중천에 뜬지도 한참은 지났을 거야. 커튼을 걷어야하나. 본즈는 잠시 고민을 하며 커튼 끝을 잡았어. 하지만 금방 그대로 손을 놓고 돌아서 버렸지. 지금 햇빛을 좀 더 쐰다고 해서 뭐가...
비가 추적추적 커크의 어깨를 적시고 있었어. 이미 흠뻑 젖어 어둡게 색이 변한 옷에는, 더 이상 빗방울이 닿은 흔적도 남질 않았지. 커크는 힘없이 살짝 미소를 지었어. 하지만 그 표정은 그저 허망하게 보이기만 했어. 본즈는 더 이상 커크에게 손을 뻗지 못하고 멈칫거렸어. 차라리 커크가 그를 몰아세우며 화를 내고 원망을 했다면, 본즈는 무거운 죄책감을 뒤로 ...
커크가 그 날 놀고 있던 클럽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 거야. 누가 화장실에서 목격을 하고 신고를 한거지. 그래서 담당 형사인 본즈가 거기에 출동해서 출입문을 막고 다들 못 나가게 했겠지. 그런데 조사를 하다 보니까, 죽은 남자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게 커크랑 같이 키스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던 거야. 그리고 둘이 클럽 위층으로 올라가는 걸 봤다는 얘기가 있었지...
32.‘네, 메인 빌딩 602호로 와주시면 됩니다.’“아, 강당이라고 들었는데 위치가 바뀌었나 봅니다.”‘급하게 장소를 정하느라... 오늘 아카데미 안에서 행사가 있다는 군요. 먼저 상의하고 있겠습니다. 천천히 오세요.’“감사합니다.”본즈는 사무적인 대화를 마치고 커뮤니케이터를 닫았어. 본즈는 며칠 째 병원 일을 쉬고 아카데미로 출퇴근을 하는 중이었어. 지...
31.“이제 두 달 정도 됐죠?”“...네?”“처음 발령 나신 게 말이에요. 그동안 적응하기는 괜찮으셨나요? 혹시 힘든 일이 있었다든지.”본즈는 길게 아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어. 두 달이라는 말에 괜히 신경만 곤두세웠어. 요즘 본즈는 낮에도 상념에 빠져 있는 시간이 길었어. 상식적으로, 직장 상사가 개인 면담으로 그를 불러다 놓고서는 결혼이니 이...
29.“저기ㅡ”“아, 닥터 맥코이.”“안녕하세요. 혹시 진료는 다 끝나셨나요?”“네, 네. 물론이죠. 요즘은 좀 예약이 많은 편이지만, 오늘은 그래도 할 만하더라고요. 소식 들으셨죠? 얼마 전에 컨스티튜션급 함선이 돌아왔다고 하더군요. 어찌나 거친 모험을 했던지 환자들이 평소보다 두 배는 늘었어요.”“그러게요. 이쪽도 손이 좀 바쁘네요. 전 우주에 있을 때...
27.“어떠세요?”“...네?”“아니, 아까부터 말이 없으셔서요. 입맛에는 맞으세요?”줄곧 창밖만 바라보고 있던 본즈는 그 말에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접시를 내려다보았어. 두 사람 앞에는 똑같은 스테이크가 두 접시 서빙 되어 있었는데, 그녀의 접시는 이미 거의 다 비워져 있는 반면에 본즈의 앞의 고깃덩이는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채로 그대로 남아 있었어. 내...
26.“왔어?”“미안. 좀 늦어서...”“괜찮아. 내가 데리러 가려고 했는데, 예약이 있어서... 아무튼 들어가자.”본즈는 문을 활짝 밀어젖히고 커크를 안으로 들어오게 했어. 아직도 병원이라면 마냥 싫은 건지, 커크는 긴장한 표정을 혀로 입술을 한 번 쓸었어. 본즈는 슬쩍 고개를 들어 벽 쪽에 걸려 있는 시계를 확인했어. 아직 병원 문을 닫기까지는 시간이 ...
24.“저기, 짐.”본즈는 커크에게 다가서며 헛기침을 두어 번 했어. 식장 안이 대화 소리로 온통 시끄러워서 커크는 본즈의 기척을 느끼지 못한 것 같았어. 커크는 한 손에는 샴페인 잔을 든 채로, 살짝 미소 띤 얼굴을 하고 서 있었어. 하지만 그렇다고 정확히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지. 본즈는 커크가 머릿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상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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